“이게 다 너 때문이야~”
‘기가 막힌다’는 것은 숨을 쉴 때 나오는 기운이 막힌다는 뜻으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놀랍거나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를 나타낸다. 원래 남 탓을 잘하는 탕아인 것을 모르진 않았으나, 같이 술 마시고 공감해 준 시간 속에서 하봉이가 탕아에게 둥이를 유혹하라는 어떤 몸짓도 말도 한 적이 없었다.
“너가 아니었으면 순댓국집에 갈 일도 없었을 거고, 거기서 셋이서 술을 마시지도 않았을 거야. 두진(둥이)이가 너한테 누나, 누나 하며 엉기는 꼴도 보지 않았겠지……”
탕아의 눈에 둥이가 하봉이한테 애정이 담긴 눈빛과 말과 몸짓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정구 선배 결혼식을 보면서 내 가슴 한쪽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어.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남자들한테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어. 내 감정인데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짜증 나서 밥도 안 넘어가더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 때문이었어!”
도대체 이 아이는 전생에 투우사였나? 나는 소? 반대인가?
하봉은 너무 기가 막혀서 앞에 놓인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와작와작 씹어 삼키고 있었다. 커피가 바닥나고 얼음도 다 먹어 치운 후 하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런 폭언을 들으며 상처를 받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카운터를 지나쳐 가다 새로운 메뉴 광고판에 시선이 꽂혔다.
‘망고를 넣은 라떼는 어떤 맛일까?’
몹시 궁금해 우뚝 서서 광고판을 뚫어질 듯 보고 있노라니 점원이 주문하시겠냐고 묻자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망고라떼를 시켜 탕아가 버젓이 앉아 있는 공간의 다른 테이블에서 신상 메뉴를 맛본다면 하봉은 탕아의 완전한 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몹시 유혹적인 색감과 먹음직스러운 형체는 카페 문을 쉽게 열고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순간 눈앞에 망고라떼가 실물로 나타났다. 눈을 의심하며 감았다 떴다를 서너 번 하니 망고라떼를 내민 손의 주인은 탕아였다.
“불쑥 일어나길래 화나서 가는 줄 알았더니, 이거 주문하려는 거였어?”
아마도 하봉은 음식을 향한 감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은 둔하거나 상실돼 가는 쪽이고, 그에 비해 탕아는 한 발짝 앞서 상황을 파악하고 실행하는 쪽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