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그냥 커피일 뿐이야. 지금 니가 여기 서서 3분 넘게 보고 있던 거야. 마시고 싶은 거잖아?”
커피를 받아 든 하봉은 잠시 망고라떼를 봤다. 빨대에 입을 물고 들이마시면 궁금했던 맛의 비밀이 풀릴 것이다. 그리고 하봉은 늘 그래왔듯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을 망고라떼 한 잔에 희석하려 할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의 충만감과 함께, 시간차를 두고 왔던 허전함과 불안함을 반복할 것이었다.
세상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물레방아의 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도 있다. 하봉은 지금껏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의 누적으로 인해 늘 새로운 일을 접할 때면 망설이고 주저했다. 가만히 망설이고만 있었다면 지금의 구독자를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일을 하다 보니 이뤄진 성과였다. 그럼에도 하봉은 스스로를 실패에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늘 우유부단했고, 맛있는 음식물 앞에서는 무장해제 돼 버렸고, 기분이 상해도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집에 와서 응징할 계획을 세웠고 막상 비슷한 상황에서는 뒷걸음질 쳤다.
십만 대군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었다. 내 앞에 놓인 유혹을 뿌리치는 것, 기존의 방식을 거슬러 선택하는 것에도 필요했다. 처음 30퍼센트였던 거절은 탕아의 질문에 70퍼센트에 근접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앞에 놓인 음식을 뿌리치고 나왔었다.
당당하고 뿌듯하게 걸어가다 왜 코끝이 시큰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펑펑 울고 싶은 마음에 산책길로 빠르게 이동했다.
“너한테 절대로 할 생각이 없었던 말이 있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까…… 이젠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너를 질투하고, 너를 무시하고, 너를 지배하려고 했던 것 같아.……그게 결국은 나를 향한 것이었어. 그래서 제대로 너한테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어.”
‘옛말에 사람이 변하면 저세상에 가까워졌다’는 표시라고 한 말을 동네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통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열 번을 들어도 귀에 안 들어 오는 말과 달리 처음 들었을 때부터 몇 번 다른 상황에서 듣게 되었을 때도 하봉의 뇌리에 되새겨졌던 말이었다.
“그래 이기적인 거 맞아, 이 말도 결국 나 편하자고 하는 거야. 니가 받아들이든 아니든……, 너와 다시 출발해보고 싶어. 삐뚤어진 관심 표현 말고, 처음부터 느꼈던 너에 대한 호감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물론 너의 마음이 가장 중요해.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