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 기억에 남는 장면과 소감
‘아메리칸 뷰티’ 장면1
검은 비닐이 바람에 휘날리던 장면입니다.
흰 비닐이었을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검은 비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이 장면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길바닥에 버려진 비닐봉지가 바람이 부는 대로 춤을 추듯 흔들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무척 독특한 분위기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비닐봉지였습니다. 길을 가다 흔히 발에 차이는 버려진 비닐봉지에 관심을 두게 만든 장면입니다. 요즘도 길을 지나다 가끔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를 볼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보게 됩니다. 뭔가 시선이 집중되고 비닐봉지의 유연함이 부럽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내 몸이 떠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메리칸 뷰티’ 장면2
딸의 친구 안젤라와 레스터가 키스하는 장면입니다.
레스터의 딸, 제인의 친구인 안젤라는 레스터가 첫눈에 반한 10대 소녀입니다.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안젤라는 대중의 주목을 받는 모델이 되고 싶어 합니다. 40대의 중년 남자, 친구 아버지의 근육을 보며 유혹하던 안젤라는 영화의 후반부에 레스터에게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제인과 리키가 가출해 자신의 곁을 떠난 것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고 여자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도 보였습니다. 안젤라는 다른 또래들에게 모델이 되기 위해 유명 패션잡지 사진사와 잠을 잤다고 스스로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레스터는 그런 안젤라가 자신과 달리 당당해 보였고 안젤라를 통해 젊었을 때의 추억과 마음을 되찾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안기는 안젤라가 실은 그저 평범한 소녀일 뿐임을 알고 욕망을 자제합니다.
‘아메리칸 뷰티’ 장면3
리키의 아버지, 프랭크가 비를 맞으며 레스터를 찾아온 장면입니다.
이 영화의 장면 장면에 다 눈길이 갔지만 영화 후반부에 나왔던 프랭크의 정체성이 반전이었습니다. 프랭크가 그렇게 혐오했던 동성애자가 본인이란 사실이 레스터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지나친 규율로 아내와 아들을 숨 막히게 했던 원인이 본인의 내적 혐오에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약간 심리적 지식을 이곳저곳에서 주워듣고 봐서 ‘모든 원인은 내 안에 있다.’가 어느 정도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0여 년 전, 이 영화에서 접한 리키 아버지의 모습은 낯설고, 폭력적이면서도 예상을 비껴간 한 방이었습니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고민하다 권총을 겨누는 비에 젖은 프랭크는 욕망의 끄트머리를 마주하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메리칸 뷰티’에 대한 소감
‘아메리칸 뷰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비닐봉지였고 뒤늦게 눈길이 간 것은 장미였습니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비닐봉지를 촬영한 것만이 각인되었습니다. 장미의 붉고 푸른색이 상반되게 사용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의 평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지식입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꽃인 장미는 여러 가지 빛깔이 있지만 붉은색과 많이 연관지어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붉음은 욕망을 나타내고 들에 핀 장미와 화단에 핀 장미로 대조된다는 것도 사람들이 알려준 정보입니다.
레스터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지만 자신보다 어린 상사의 실적주의 탓에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1999년 미국의 중산층 가장입니다. 치어리더이고 부모님을 무척 싫어하는 딸, 제인과 부동산 일을 하는 아내, 캐롤린도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가정의 구성원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흔한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오해하며 의지하지 못해 외로워합니다.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욕망으로 가득 찼던 당시의 미국 사회를 사실적이면서 관능적으로 표현하여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얻었던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2024년을 사는 우리 삶의 모습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다루기 불편했던 인간의 욕망과 성적인 부분을 블랙코미디로 접근한 점도 새로웠습니다. 문제를 인식시키면서도 무겁지 않게 보여준 점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해결책도 다뤘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불편하고 마주하기 어려운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