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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 휴&예 7

by 휴&예 2024.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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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 휴&예 7

어깨에 둘러메는 백에 핸드폰, 양산, 카드 지갑, 작은 텀블러, 묵주를 들어가는 대로 넣는다.

집 앞에 흐르는 하천을 따라 난 산책로를 양산을 쓰고 걸어간다.

잡초들 속에 꽃을 피운 들꽃들을 본다.

가방에서 묵주를 꺼내 한 알 한 알 돌린다.

 

하천을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 떼

테옆 인형처럼 열을 맞춰 물갈퀴가 달린 발을 바삐 움직이는 오리 떼 가족

누군가 몰래 가져다 놓은 조각상처럼 무심코 지나치다 한 번 더 보게 되는 백로와 왜가리

뒤에서 숨을 헐떡이며 쨍쨍한 날씨에 조깅해 지나쳐 가는 청년과 중년의 사람 몇몇...

하천 산책로의 중간쯤 걸어가면 어김없이 쌩하고 지나가는 사이클 동호회 사람들

그들의 다부진 뒤태는 밀착된 유니폼으로 인해 도드라져 있다.

 

다소 갈증을 느끼며 텀블러를 꺼내 목을 축인다.

시선을 무심히 흘러가는 하천으로 돌리고 잠시 양산을 접는다.

멍하니 물의 흐름을 감상하다 양산을 펼쳐 들고 걸어간다.

쨍한 햇살에 다시 가방에 손을 넣어 뒤적이는데 

뭔가 허전한 공간

스테인리스의 감촉이 비어있다

보이지 않는 텀블러

 

물을 마셨던 곳으로 발길을 돌려 빠르게 걸어간다

땀이 흐르고 마음은 초조해진다.

10분 전에 분명 물을 마셨다.

가방이 아니면 여기밖에 없는데...

그 사이 누가 가져간 것인가?

 

식은땀이 목덜미로 내려오고

손으로 땀을 훔치다 다시 감지되는 허전한 기운...

손가락으로 계속 돌리던 묵주는 어느 지점에 떨어뜨렸을까?

 

천천히 텀블러의 빈 공간을 인지했던 곳으로 두리번거리며 걸어가 본다.

비슷한 어떤 형체도 보이지 않고

이번엔 조금 묵직한 허전함이 다가온다

햇볕이 고스란히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양산?

 

다시 왔던 길을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살피며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니 다시 집 앞

있어야 할 곳에 보이지 않는 것들...

기억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나 될까?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다시 한 번 더 걸어가 볼까?

이미 지쳐있고

해는 저물어 가고 주위는 흐릿해졌다

서러워지고

원망과 자책이 올라오고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끈을 타고 미끄러지는 묵주

셋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찾아서 다행인 건지... 

현관 앞에 놓인 택배에 붙여진 사진은 갖고 싶었던 텀블러

새 텀블러를 검색하던 나를 위해 보내준 친구의 마음

원하던 것을 얻은 기쁨은 지난 3년을 함께한 아직 쓸 만했던 텀블러에 대한 미안함 아쉬움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전에 사 놓았지만 알록달록한 무늬가 어색해 넣어두었던 양산을 펼쳐본다.

 

그렇게 산책길을 새 것들로 가방을 채워 걷고

양산의 어색했던 무늬가 익숙해질 즈음 

하천을 흐르는 물과 헤엄치는 잉어들과 오리 떼, 백로와 왜가리, 조깅하는 청년과 중년 몇몇 그리고 사이클 동호회 무리를 지나쳐 보내고

익숙한 풍경 속에서 텀블러의 물로 목을 축이며 천천히 걸으면서

잡초도 들꽃도 하천의 풍경들이 친숙하지만 옛것은 아니구나...

지난 일의 과오로 인한 아쉬움과 자책을 하천에 흘려보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