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마치 꿈을 꾼 듯했다. 샛길에서 나의 등을 밀치고 지나간 등산객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젊었는지 나이가 들었는지 볼 수 없었으니 알 수 없다. 다만 익숙한 냄새... 희미한 냄새가 나의 정신을 잃게 만든 것인지,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어나 본능적으로 앞으로 걸었고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하고 반가운 샛길 입구가 눈앞에 딱 놓여 있었다. 나타났다기보단 누군가가 입구를 찾아서 내 앞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 그 때 나의 감정을 대변 할 수 있는 근접한 표현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서 집에 돌아왔을 땐 녹초가 되어 씻는 것도 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눈을 떴을 때도 전등은 켜져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묘한 느낌으로 게슴츠레 뜬 눈으로 코를 ‘큼큼’거렸다. 개의 후예인 양 방 안을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슬리퍼까지 냄새를 맡다가 크로스백의 지퍼 고리에 묻은 작은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코는 그 조각에 강한 반응을 했다. 알 듯 말듯 하던 해답을 찾았을 때의 희열과 문제의 근원을 찾아낸 것에서 오는 안도감이 일었다.
황갈색에 삿갓 머리를 한 작은 버섯 조각, 그 버섯에는 강한 냄새는 아니지만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후 산책로를 다시 찾을 용기가 생긴 것은 한 달이 거의 지날 때쯤이었다.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아 우치와 함께 갔다. 우치는 민감한 후각과 함께 감각이 발달해 있다. 또치가 우치를 만나게 된 것은 원룸에 이사 온 지 얼마지 않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있어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원룸 계단을 올라갈 때 갈색에 검은 줄무늬가 다리를 휙 스치고 가는 바람에 놀라서 난간을 붙잡았다. 이사를 와서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갈 때면 길양이들 두어 마리가 간격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등산객들을 따라다니곤 했다. 따라다닌 다기 보단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또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굳이 저울에 달아 수치를 잰다면 아마 좋아하는 쪽에 밥숟가락 한 스푼 정도의 양이 더할 것이다. 어릴 때 외할머니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어울려 놀곤 했던 추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강아지가 아닐지 생각했었다. 고양이는 예민하고 까다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냥 동물일 뿐이었다. 다소 멍청한 면이 보일 때면 피식 웃음이 나왔었다.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글빙글 돈다든지 신나게 달리다 미끄러져 벌떡 일어난다든지 그런 면을 보지 못했다면 또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