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치의 하루 - 엿보기
완벽한 준비란 주관적인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검정에 가까운 회색 트레이닝복에 바람막이 하나를 걸친 것과 크로스백에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전기충격기를 넣어 온 것 그 외에 다른 날과 달랐던 것은 거의 없다. 소형 접이식 의자를 가져오는 대신 휴대용 쿠션을 넣어온 것은 별 쓸모도 없었다.
샛길 입구에 몸을 숨길만한 나무 둥지를 찾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몸뚱이를 가릴만한 나무가 없었고 수풀이 우거진 것도 아니었다. 뭔가 식물학자나 곤충학자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폰으로 셀카를 찍기도 하고 풍경을 찍기도 하며 나름대로 가끔 행인들의 시선을 따돌렸다. 행인들은 모두 휑하니 지나가는 이들이었고 뭔가 의미 있는 몸짓을 한 사람이라곤 급한 볼일을 해결하다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급히 사라진 할아버지에 가까운 아저씨뿐이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한 지 2시간이 지났을 때, 다리 부분을 스치는 차가운 느낌에 무심코 내려다보니 실뱀보다 통통한 뱀이 발밑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젠장!
얼음처럼 굳어 뱀을 노려보다 뱀이 저만치 떨어졌다 싶을 때 냅다 뛰었다. 태어나 이렇게 가까이서 실물로 뱀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원룸 건물 앞이었다. 한숨을 돌리고 집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처음보단 심박동이 둔화되긴 했으나 발밑을 유유히 스쳤던 기분 나쁜 차가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은 또치의 꼼꼼함에 늘 태클을 걸어왔다. 작품을 흥정할 때도 처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대답을 준비하지만 여덟에 여섯 일곱은 상대의 말에 동의해 버리게 된다. 갈치처럼 능란한 말솜씨가 아니어도 상대방이 '너무 작품이 좋다'든지 '어려운 경제 상황에 작가님 작품을 꼭 구입하고 싶다'든지... 대략 이런 멘트들에 넘어가 버린다.
부모님이나 꾸준히 만나는 이들은 늘 또치를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어 문제라고 했다. 고집이 세다는 건 동의할 수 없으나, 융통성 부분은 언제나 아쉽다. 또치는 오히려 자신이 우유부단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험으로 볼 때 고집 센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든지 말든지...눈치가 빠르고 융통성이 있었다면, 그러니까 그 갈치처럼 얼굴에 철갑을 두르고 혀에는 빠다를 내뿜으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좁아터진 이 4평 남짓의 원룸을 벌써 벗어났으리라...
그날은 산책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지도 못했고, 텀블러에 담아간 원두커피를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음미하지도 못한 채 또치 인생에 섬뜩한 경험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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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치의 하루 -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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