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데는 원인이 존재한다. 인간이 인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에 따라 우연이 될 수도 필연이 될 수도 있다.
또치는 혼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하고 누군가와 같이 생활하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우를 받아들여 사료를 사서 먹이고 뒤처리를 하면서도 불만보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홀로 내쳐지지 않은 것에 대한 위안일 수도 있다. 또치는 작업을 하다가도 종종 또우를 찾아 작은 원룸 안을 둘러본다. 그럴 때면 또우는 꼬리를 살랑 흔들면서 또치의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은은한 온기를 퍼뜨린다. 또치가 불을 켜고 잠이 들면 또우는 그 옆에 잠시 웅크리고 있다가 같이 잠이 들기도 하고 뭔가에 놀란 듯 잠이 깨서 원룸 안을 살피듯 돌아다니기도 한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화들짝 몸을 일으키다 또치의 얼굴에 실례를 하기도 한다. 양이 많지 않을 때는 별일 없이 넘어가지만, 어젯밤엔 조절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치가 차갑고 찝찝한 공격에 불쑥 눈을 떴을 때, 또우는 늘 그렇듯 소변 패드에 앉아 털을 핥고 있었다.
인간이나 설치류와 달리 특정 신경전달물질이나 화학물질에 고양이는 강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또치는 생물학적 특징임에도 또우가 남달라 보이고 든든하게 생각되었다. 샛길에서 또우의 안내로 버섯을 발견했을 때도 그 자료가 사실임을 실제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또치의 식습관 중 칼슘 섭취를 위해 멸치를 간식처럼 자주 섭취하곤 한다. 멸치 가격이 상승해 점점 섭취량이 줄어들고 있지만 짭짤하면서도 바다의 비릿한 향이 중독성이 있다. 멸치의 대가리를 따로 보관했다가 가끔 국을 끓일 때 쓰곤 했는데, 우려내고 남은 멸치 대가리를 산책로의 고양이들과 나눔을 하고 싶어진 것은 음식물 처리의 목적이 컸었다. 식량이 부족한 동물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집사만큼 유혹적인 존재가 있을까? 태어난 지 얼마지 않은 또우에게 멸치 대가리는 특별 간식이었고, 이젠 부족함 없이 또우의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고 있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렸고 또치는 갈치에게 답장을 쓰고 있다. 갈치의 제안에 추가 사항을 넣었다. 갈치가 또치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또치는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오후에 꺼내 놓은 ‘버섯’ 작품을 전등에 비춰 살펴본다. 누군가 샛길을 닦아 놓지 않았다면 그 길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버섯 향에 취하는 낯선 경험을 못 했을 것이다. 오늘 다리 밑을 스쳤던 서늘한 경험 또한 또치의 스케치 파일에 저장되어 있다.
또우가 또치의 다리에 털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자 또치도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빈다. 의자에 기대 눈을 감는다. 뱀이 하필 자기 다리 밑을 지나친 것인지? 샛길은 누가 닦아 놨는지? 머릿속을 맴돈다. 자주 꿈을 꾸지 않는 편인 또치는 감전된 듯 약간씩 몸을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