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옥자’ 기억에 남는 장면과 감상
기억에 남는 장면1
강원도 산골 마을의 푸르름과 함께 ‘옥자’와 산골짜기를 뛰어다니고 시냇가에서 물놀이하던 미자의 모습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산골 풍경과 순순한 ‘옥자’와 ‘미자’의 등장이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했습니다. 산비탈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던 ‘옥자’와 계곡물에서 큰 몸짓으로 수영하던 ‘옥자’의 옆에 항상 미자가 있었습니다. 미자는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살고 있었습니다. 미자와 함께 ‘옥자’를 보살피던 순박해 보이던 할아버지는 ‘옥자’의 험한 항로의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미자의 부모님 산소에서 금돼지를 주며 ‘옥자’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게 만들려던 할아버지의 생각은 완벽히 어긋납니다. 미자는 가차 없이 금돼지를 집어던지고 작은 몸으로 거대 기업, 미란도 사를 향해 ‘옥자’를 구하러 달려갑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 2
‘옥자’를 감옥 같은 우리에 가두고 강제로 교배하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는 것,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 둘 다 폭력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단순히 생산의 도구로 생명을 인식하는 문명화된 인간들의 탐욕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이 장면은 제가 어릴 적 키웠던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시골 외갓집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소와 송아지의 눈망울도 떠올랐습니다. 고통의 눈물을 짓던 ‘옥자’의 모습처럼 동물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어린 시절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의 표현 방법이 다를 뿐 행복하면 웃고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과 같은 동물의 모습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 3
후반부로 가서 첫 장면의 장소인 산골로 돌아와 ‘옥자’와 미자는 평화로운 풍경을 만듭니다. 도살장에서 수만 마리의 돼지들 속에서 울부짖으며 죽음을 맞이하러 가던 돼지 부부가 맡긴 새끼 슈퍼 돼지도 자연스럽게 산골 풍경에 동화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엔딩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어떤 혈연이나 친분이 없는 버려지고 소외된 대상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옥자’와 ‘미자’의 공간에 들어온 새끼 슈퍼 돼지는 처음부터 그들과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생명체가 지구의 삶을 사는 데는 그리 거창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옥자’에 대한 감상
개봉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느낌인데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흐른 작품입니다. ‘옥자’는 슈퍼 돼지의 이름이고 ‘미자’는 ‘옥자’의 친구이자 동반자입니다. 둘 다 이름에 ‘자’가 들어가서 형제 같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 관계 같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자’로 끝나는 이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미국합작이란 타이틀과 달리 한국의 소박한 풍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다루는 것도 주인공들의 이름처럼 순수한 본질을 건드려 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며 육식 생활을 조금 멀리하게 되었다던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저도 이 영화 덕분에 제 돈을 주고 고기를 사서 먹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사주는 고기를 마다하지는 않습니다.
‘옥자’는 채식주의자를 지향한다기보다 자연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량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인물들과 단 한 마리, 친구 슈퍼 돼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과감하게 내던지는 소녀의 대비가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