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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의 일(日, 業) - 10

by 휴&예 2025.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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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콘으로만 배를 채울 수 없어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전에도 몇 번 같이 갔었기 때문에 탕아도 신뢰하는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라 손님이 많진 않았지만, 테이블은 다 차 있어서 잠깐 서 있어야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자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려고 나간 상태였고, 둥이 혼자서 홀 서빙과 음식 조리를 다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봉이가 가게에 들어서자, 구원자를 만난 듯 도움을 청했다. 얼결에 하봉이가 테이블을 치우고, 탕아는 정리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봉은 다른 테이블에 서빙을 끝내고, 자신의 테이블로 순댓국과 모듬 순대 한 접시를 직접 가져다 놓으며 앉았다. 탕아는 하봉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며 순댓국에 깍두기 국물과 들깻가루를 넣었다. 

 

“너 여기서 알바한 적 있어?”

“바쁠 때 손 빌려주고, 수고했다고 이렇게 모듬 순대 서비스로 먹고… 서로 상부상조 하니까 좋잖아.”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둥이는 대충 식당을 정리하고 소주 한 병을 가져와 옆자리에 앉았다. 전에 밤새 술을 마신 친분으로 가끔 들렀을 때 마주치면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한 적이 있었다. 둥이는 자연스레 하봉을 누나라 부르게 되었는데, 맨정신이었다면 이 정도로 가까워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술이 한두 바퀴 돌고 알코올에 강한 탕아는 전과 달리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난 웬만해선 생리적인 현상을 남들한테 티내지 않잖아. 근데 쫑구선배랑 만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트림이 나오는 거야. 해놓고도 내 귀를 의심했다니까…….” 

“잘 알겠지만 내 배는 늘 가스로 차 있잖아…, 하루는 피자 맛집에서 피자 소스와 토핑에 대해 말했던 것 같은데…, 도중에 푸욱~”

 

쫑구의 표정은 잠시 멈칫했지만 금세 평온해졌었다. 그의 그런 온유한 매력에 여자들이 특별함을 느낄 것이다. 하봉이나 탕아처럼 자신만의 안테나가 있는 여자들이라면 감추고 싶은 모습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남자 친구는 가족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 탕아는 본인 말대로 하봉이한테 한 번도 트림 외에 다른 생리적인 현상을 들킨 적이 없었다. 하봉이가 둔한 면도 있고,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맞는 것이라곤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취향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좋아하는 이성이나 성격적인 면에서나 비슷한 부분들이 나타나자, 하봉은 탕아가 새롭게 보였다. 외계인 비슷했던 모습이 자신을 닮은 사람의 형태로 비췄다.

 

“그래도 여자들은 남자들이 그러면 엄청 혐오하잖아요?”

“혐오까진 아닐걸? 그냥 더럽~ 정도…”

 

둥이는 눈에 물기가 스치며 조금 분한 표정이었다. 예전에 관심 있던 여자애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가스를 분출했다가 그 여자애의 표정에 상처를 받아 그 뒤로 피해 다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