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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의 일(日, 業) - 11

by 휴&예 202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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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것은 빛을 낸다. 

빛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 TV를 넋을 놓고 보다가 엄마의 호통을 서너 차례 듣고 위험 수위에 다다랐을 때 힘들게 내 방으로 들어갔었다. TV 화면도 밝았고 그 안에 사람들은 특별했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을 닮고 싶었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동경했다. 그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꿈꿨다. 그 바탕에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머리하나 정도 더 솟아 있는 우월감과 당시에는 날씬해 보였던 외형 덕이었다. 보석바와 보석 사탕을 뽐내며 먹으면서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을 느낄 때, 마치 브라운관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그 아이가 내 검지에 꽂힌 보석 사탕 반지를 뺏으려고 덤벼들지 않았다면 ‘화려한 무대의 주연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봉은 가끔씩 생각한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무의식의 실행이었다. 블로거에 일상을 올리다 사람들이 하봉의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둥이는 고등학교에 올라가 처음으로 맞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몽이란 친구를 통해 우연히 유아를 만났다. 처음 유아를 봤을 때 둥이는 ‘얼굴에 반사판이 부착되어 있나?’란 착각이 들었었다. 계란형 얼굴에 뽀얀 피부 때문인지 유난히 밝아 보였던 유아는 둥이보다 2살 연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일이 늦은 둥이와 생일이 빠른 유아는 햇수로 3년의 차이가 났다. 몽이와 유아는 부모님들이 친구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며 누나 동생 하는 사이였다. 몽이가 유아와 자주 만났던 것은 유아에게 관심이 있어서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둥이는 유아에게 마음이 가고 있었다. 가끔 몽이는 부모님이 주말에 집안 행사에 가거나 여행을 가서 집이 비면 유아와 둥이를 초대했었다.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다 몽이가 간식으로 떡볶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둥이는 유아를 만날 때면 먹는 것을 최소화했었다. 평소 식성의 삼 분의 일도 먹지 않는 이유는 가스가 잘 차는 소화기관의 문제였다. 군것질과 야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다 보니 자연스레 형성된 생리현상이랄까…. 유아를 만나면서 식단을 바꾸려고 노력은 했으나, 워낙 그간의 식습관이 있다 보니 잘 조절되진 않았다. 그날따라 몽이는 집에 귀한 포도주스가 있다며 투명한 와인잔에 따랐고 알코올이 들어간 포도주스를 맛있다며 한 잔 두 잔 마시자 셋은 어느새 눈의 초점이 살짝 풀려 있었다. 덩달아 괄약근도 정신을 못 차리고 부글거리던 차에 둥이는 참다못해 일어나 나가려다 그대로 ‘푸우푸~욱우푸’ 

 

탕아는 집에서 오빠의 뒷전이었다. 선물을 받아도, 용돈을 받아도, 물건을 살 때나 맛있는 음식을 고를 때도 늘 오빠가 우선이었다. 탕아는 공부에서도 운동에서도 오빠보다 앞서야 했고, 부모님들도 탕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탕아는 남자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기분이 우쭐해지고 도움 되는 것이 많았다. 하봉에게 다가간 것도 첫 느낌은 키도 크고 뭔가 에너지가 있어 보여서였다. 알고 보니 툭하면 잊어먹고 흘리고 다니고 먹는 것에 흥분하는 칠칠이랄까…, 실체를 알고도 굳이 자기 돈으로 떡볶이며 간식을 사주면서 관계를 유지한 것은 여자인 친구 중에 가장 만만해서 또는 편해서…? 이유야 어디 있던 하봉은 여자인 친구 중에 가장 오래 만나고 트림을 튼 유일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