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 힘을 빌려 셋의 숨겨진 일면을 알게 되었던 술자리는 저녁 손님들이 들이닥치자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세 사람은 정기적으로 순댓국집에서 술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가게가 마칠 때쯤 하봉과 탕아가 가서 둥이를 도와 가게를 정리하고 자신들의 술 테이블을 만들어 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둥이는 자신이 개발하는 신메뉴의 시식을 부탁했다. 최근 늘어난 젊은 손님들의 입맛에 맞춘 치즈 순대와 곁들여 먹는 내장, 간 초무침이었다. 맛에 있어서는 일각연이 있는 하봉과 탕아는 순대 특유의 맛이 치즈의 맛과 어울리기 위해 필요한 향신료나 조미료에 대한 의견을 냈다. 둥이는 고맙다며 그 날의 술값을 받지 않았고, 가게 문을 닫고 탕아를 택시 태워 보낸다며 배웅했다. 탕아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렸고 둥이는 어정쩡하게 탕아를 부축하고 택시 타는 곳으로 향했다. 탕아는 정장을 입으면 힐을 신고, 캐주얼한 복장일 때는 기본 7cm 운동화나 다나에 깔창을 넣고 다닌다. 본인은 163cm라고 하지만 깔창을 빼면 160cm가 안 되는 키임을 중학교 때부터 쭉 봐와서 하봉은 익히 알고 있었다. 저렇게 비틀거리는 것도 알코올의 이유만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셋이 만날수록 하봉은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탕아는 남자들에게 호감을 끄는 법을 알고 있었고 하봉은 그에 비해 나무 빗자루 같달까? 하기 좋은 말로 인연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라고 하고 하봉은 그것을 믿는듯하지만 세상을 살수록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탕아와 쫑구선배의 관계를 보면 또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진심이란 복병을 마주하게 된다. 운동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별 기대 없이 만났기 때문에 하봉이나 쫑구선배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짧은 시간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것도 하봉의 약한 부분과 쫑구의 현실적 문제가 부딪히는 바람에 멈추고 말았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조합해 보면 결국은 인연이 있어야 만나고,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또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봉의 찜찜한 마음 때문인지 지난 술자리 이후 순댓국집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나는 둥이를 남자로 느끼고, 탕아에 대한 관심을 질투하는 마음은 아주 일부분이다. 마치 새끼손톱에 어쩌다 낀 이물질 정도. 그 이물질을 본 순간 제거하지 않으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하봉은 그 정도의 마음이 자꾸만 거슬리고, 그럴수록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 짜증 났다. 탕아도 둥이도 연락이 없는 상태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요놈들이 나만 빼고 술잔치를 벌이나?’ 싶은 생각에 미치면 쿨하게 넘기고 싶은 마음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불가능이란 없다’ 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만한 상황이 아닌 것에 ‘불’ 자가 붙는 것도 아주 유쾌하지 않았다.
“그날 잘 들어갔어?”
“……”
‘어라!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면 되는데 말 줄임이 길게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