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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의 일(日, 業)- 2

by 휴&예 202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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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생각이 많아질 때 사람들은 일에 몰두하거나, 운동을 격하게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봉은 우선 냉장고의 문을 연다. 냉장고는 한 대지만 알차게 채워져 있다. 냉동실에 기본적으로 삼겹살과 볶음용 닭과 치즈와 만두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크림 빵류들이 이름과 날짜가 적힌 팩에 정리돼 있다. 냉장실에는 각종 소스와 과일과 채소가 자리 잡고 있고, 먹다 남은 배달 음식들도 락앤락 통에 정리돼 있다. 협찬으로 받은 배즙과 도라지즙 등도 채소 칸에 채워져 있다. 벽면 수납장은 라면과 과자류와 각종 캔과 음료로 진열돼 있다. 집안 어디를 가나 먹을 것들이 구비돼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 

 

며칠 전 먹다 남은 매운 닭발을 치즈를 뿌려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짭짤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듬뿍 넣은 아메리카노와 먹기 좋게 잘라 놓은 멜론을 테이블에 세팅 한다. 옆에 켜진 노트북은 주로 먹방 영상이나 최신 영화나 넷플릭스를 즐겨 시청하는 데 쓰인다. 

이미 머리로 스며든 생각을 하지 않을 순 없지만 무뎌지게 만드는 효과가 크다. 영상이 끝나고 먹을 것들이 비워질 때쯤 하봉은 다시 앞으로 할 일과 지난 일들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무거워진다.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 눈앞의 그릇들을 하나씩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싱크대와 벽면과 바닥의 얼룩을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일이 점점 늘어난다. 이마에 땀이 차고 팔이 저리면 그만 쉬라는 신호임을 몇 번의 몸살을 겪고 체득했다. 마음 같으면 대청소해야 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으로 대충 정리를 끝내고 노트북의 영상을 내리고 블로그로 들어간다. 편집해 놓은 영상을 올리고 간단한 소개 멘트를 넣는다. 지난 번 올린 영상의 댓글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허전함과 불안함은 중독을 유발한다. 어릴 때부터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이긴 했으나, 지금처럼 닭 한 마리에 피자 한 판을 소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먹다 보니 위의 용량이 늘어난 것인지 용량은 그대로인데 자꾸 밀어 넣고 있는 것인지 하봉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먹는다는 것과 유혹과 중독은 감각과 연관이 있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맛있는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니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섭취량을 초과해 들어가는 자극적인 음식들로 인해 언제나 속이 용광로처럼 부글거린다. 설사하거나 변비에 걸리거나를 반복하지만, 소화제나 양배추즙 등으로 임시 조치를 할 뿐이다. 

 

반짝이는 것은 시선을 집중시킨다. 누군가에 의해 어디선가 떨어졌을 장식물 정도로 생각했다. 그것을 주워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 다시 땅에 떨어뜨리지 못하고 가져온 것은 그 모양이 섬세한 것도 있고 반짝임이 고급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