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비하면 하나의 희미한 선에 불과한 상처가 하봉에겐 여전히 깊은 상처로 새겨져 있다. 남자들과 미팅이나 소개팅을 할 때면 혹여라도 화장이 땀에 지워져 있을까 수시로 거울을 훔쳐봐야 했다.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몇 명 있었지만, 하봉은 자신 안에 각인된 깊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뾰족하게 대했다.
연말이나 기념일들이 다가올 때면 가뭄에 콩 나듯이 소개팅이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커플이 부각되는 시기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마음으로 거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혼자인 이유를 친구들은 하봉의 눈이 높고, 까다로워서라고 한다. 하기 좋은 평가다. 키는 자기보다 같거나 조금 작거나 커도 상관없다. 하봉의 키가 170센티에 근접하기 때문에 유전학적으로 그리 큰 사람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외모도 강호동 스타일보단 유재석 쪽이 좋지만, 자신의 뾰족함을 받아줄 수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하봉은 사람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눠보고 평가하는 편이다. 자신의 상처 때문일 수 있지만 외모보단 인성이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20대와 30대 초반에는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면 5초 안에 결심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싱글의 삶을 유지하다 보니, 상대에게 세 번의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친구들의 의견도 있었고, 어떤 기회로 오해를 받게 되었을 때, 하나의 사건이 그간의 공든 탑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선입견을 만드는 것을 보고 반성한 부분도 있다. 어느 정도 사고가 말랑해지고, 3번째 수술로 옅어진 상처에 힘입어 친구의 대학 선배를 만나는 기회가 오자 흔쾌히 수락했다. 하봉은 그를 쫑구라고 부르면서 정구라는 이름은 너무 밋밋하고 정이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쫑구는 3살 위의 오빠였지만, 하봉에게는 그저 쫑구였다. 한 달을 꾸준히 만난 이성은 최초였고 그만큼 쫑구는 하봉을 배려했다. 불쑥 날카로워지는 하봉의 반응을 그저 웃음으로 넘기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하봉의 동선을 묵묵히 따라다녔다. 고맙다는 마음보다 이제 나를 제대로 대접해 주는 남자를 만난 것을 다행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루 세 번 규칙적으로 보내던 카톡이 한 번으로 줄어들고, 하루 두 번 통화하던 것이 사흘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지만 고개만 갸우뚱했다. 막 직장을 정리하고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에 집중하던 때여서 정신없기도 했었다. 바쁜 일이 조금 정리됐을 때 어떤 허전함을 느꼈고 피자 한 판을 시켜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서 의욕이 없어 실수를 반복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지?’ 자문했을 때 퍼뜩 일주일 전 쫑구가 연락을 달라고 했던 카톡이 떠올랐다. 하봉은 친구들과의 약속도 가끔 깜빡해서 원망을 듣곤 했다. 일이 많은 것도, 정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나 상대방은 문자 한 통 남기지 않을 정도의 대상이 된 것에 불쾌해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의 건망증을 자책하며 맛집에 데려가 기분 좋아지는 음식을 사주면서 기분을 달래줘야 했다. 뒤늦게 쫑구에게 전화를 걸고 카톡을 남겼지만, 소식이 없었고 쫑구를 소개해 준 친구를 통해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망치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 실감했던 순간이다. 친구는 선배를 통해 간단한 상황을 들은 터고 하봉의 그런 면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혀를 찰 뿐 위로의 기색은 없었다. 뭔가 충고를 하려다 “됐다!” 말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