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이 3개로 늘어난 것은 술잔을 채우면 말끔히 비우는 둥이의 습성 때문이었다. 하봉의 주량은 딱 반병 정도라 계산하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순대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다보니 맛집 정보로 넓혀졌고 전반적인 음식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가게에 들어갔던 이유는 분명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는데,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로 발전되어 둥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순대를 싫어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아주 어릴 때, 포대기에 싸여 엄마의 등에 업힌 채 시장에서 돼지 내장 냄새를 맡았다. 아이는 말하고 걷기가 수월해지면서 엄마가 하는 순댓국집을 피해 다녔다. 딱 한 번 시장 부근을 반 아이들과 지나가다 다른 가게에서 배달 쟁반을 머리에 이고 나오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발에 자석이 붙은 듯 서 있었다. 엄마는 반갑게 웃다가 나무토막이 된 아이의 표정을 보고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가게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온 엄마는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 이불을 바로 덮어주고 안방으로 갔다. 아이는 그날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상을 차려 놓고 가게로 나가셨고 아이는 엄마와 마주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밤에 엄마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꼭 감았다. 엄마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일을 말한 적이 없다. 순대 근처에도 가지 않던 아이는 자라서 엄마의 가게 일을 솔선해서 돕고 있다. 이젠 순댓국에 밥을 말아 먹고, 모듬 순대 한 접시를 다 처리한다.
“갑자기?”
“고등학교 1학년 말이었어요. 하굣길에 발길이 여기로 향하더라구요……”
가게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흔근히 취한 아들과 그 아들의 머리통과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안쓰러움을 담아 손으로 쓸어내리던 하봉이를 번갈아 보다 기가 차서 소리를 질렀다.
“잘한다!”
아주머니의 의도와 달리 하봉의 손짓은 진정으로 둥이에게 잘했다는 의미였다. 기특하다는 쪽이 더 가깝긴 하지만…….
계산하려던 하봉은 지갑을 두고 왔음을 알아차렸다. 내일 꼭 갚겠다며 택시비까지 빌려서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날의 계산은 거진 반년이 지나서야 갚았다. 하봉 특유의 망각은 그날의 일을 지웠고, 시장을 가는 날도 순댓국집을 돌아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이 정도면 망각이 아니라 고의로 피한 쪽이 더 맞겠지만 하봉은 진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