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하봉의 일(日, 業) - 8

by 휴&예 2024. 12. 28.
728x90

 
처음 탕아의 외침에 멍했었다. 이후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면 비례하지 않는 외모에 맘대로 행동해서 재수 없다는 말은 하봉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이 사람도 나를 그렇게 볼까?’
탕아는 남자인 친구가 많았다. 그에 반해 하봉은 여자인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친구 중에는 탕아를 대 놓고 외면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유는 남녀 차별이 심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이 공통된 점이었다. 그 친구들의 말에 백번 공감하면서도 막상 탕아가 떡볶이나 햄버거를 먹자고 하면 마지못한 듯 따라갔었다. 탕아의 알 수 없는 많은 면 중에 식성만은 공통 분모가 있었다. 탕아는 매운 것을 좋아하고 하봉은 신라면 정도의 매운맛만 소화할 수 있었지만, 분식이나 양식이나 한식이나 가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찾으려는 욕구는 같았다. 이 점으로 인해 20년 지기 우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날 이용한 거네?”
“그렇게 자학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알고 보면 너도 날 이용한 적이 많을걸?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거야, 너도 내가 맛있는 거 사줬으니까, 지금까지 만나는 거잖아?”
 
평소에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인 탕아는 쫑구 선배를 좋아했지만 대놓고 표현하지 못했다. 괜히 쫑구가 관심 없을 것 같은 하봉을 소개해 주면서 자주 연락할 기회를 만들려는 의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쫑구와 하봉은 자주 만났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았는데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배려심이 많은 쫑구와 거절을 못 하는 하봉은 1달 중 20일을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초조해하던 탕아는 하봉과 통화하다 쫑구와의 만남으로 블로그와 영상 작업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탕아는 쫑구에게 하봉의 거절 못 하는 성향을 이야기하며 요즘 바쁜 시기니 적당히 연락을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귀띔해 주었다. 쫑구는 하봉에게 그런 의향을 물었고 하봉은 별생각 없이 현재의 밀린 일감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럼 일이 좀 마무리되면 연락할래요?”
 
그렇게 연락이 뜸해졌고, 그 사이 탕아는 쫑구에게 자주 연락했었다. 쫑구는 외국에 사는 형과 형수를 대신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봉과 연락이 뜸해질 즈음 쫑구 어머니의 친척 소개로 어른들이 말하는 수더분하게 생긴 여자를 소개받았고,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 결정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장에서 하객들 사이에 다른 여자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위로 솟아 있는 하봉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하봉은 사 놓기만 하고 보관만 했던 하이힐을 신고 갔고, 쫑구는 특유의 평온한 얼굴로 눈인사하는 하봉을 보고 있었다. 쫑구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는 자그마하고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