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휴&예 1- 엄마의 엄마

by 휴&예 2024. 8. 7.
728x90

 

 

엄마의 엄마

 

2024.7.12.금.15시.햇볕이 비추던 더운 날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더우나 추우나 일당을 벌고, 반평생을 함께 한 친구들을 만나 일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밭일을 나가시는 어머니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요양병원의 위치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익숙한 병원 간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어머니를 깨워 저곳이 아니냐고 물었다.

신기했다. 생각 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 갈 수 있었는데, 알맞았을 때에 내 눈에 들어왔다. 

 

외할머니는 콧줄을 꽂고 계셨다.

콧줄...

양팔은 주삿바늘로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딸도 며느리도 손자, 손녀, 외손녀... 알아보지 못한 것은 벌써 몇 년 전부터였다. 

 

일제 강점기를 사셨고 6.25를 거쳐 4남매를 키워 오신 외할머니.

힘들고 아파도 내색 않고 주어진 일만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것은 코로나 이전부터였다.

급채하셨는지 새벽에 외숙모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119를 불렀고,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어머니를 대신해 면회 신청을 하려고 전화하면 외할머니는 병원에서 수월한 환자라고 간호사들이 말해주었다.

 

외할머니의 마지막이 그간의 궂은 날들과 달리 평안하길 매일 기도드린다. 

 

어머니는 친정에 자주 가지 못했다.

먹고 사느라...

없는 형편에 우리 삼남매 키우느라...

그래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자주 뵙지 못하고 해를 걸러 뵈어도 외할머니는 낯설지 않았다. 

몇 년 만에 봐도 늘 그 자리에 서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느티나무처럼.

어머니는 딸을 못 알아보는 외할머니에게 고맙다고 한다. 

엄마 닮아 뼈대가 튼튼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고...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내가 삐뚤어지지 못했던 이유는 

뼈대가 도드라진 몸집으로 새벽부터 일하러 가서 집에 와서 빨래와 저녁과 뒷정리까지 다 하고 몇 시간 제대로 눈도 못 붙인 채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일하러 가던 엄마의 처절한 삶을 봐와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