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달콤, 살벌한 연인’, 기억에 남는 장면과 감상
‘달콤, 살벌한 연인’ 장면 1
엘리베이터에서 냉장고를 짊어진 이삿짐센터 아저씨를 도와주는 주인공 황대우의 모습입니다.
황대우의 말투와 표정으로 보면 냉정하고 이기적일 것 같지만 사실 정이 많고 섬세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이미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부의 설정이 이전 다른 영화들에서 잘 접하지 못했던 신선함과 유머가 느껴졌습니다. 이후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 대사 한 마디 한마디가 반전의 연속이어서 내심 감탄했습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 장면 2
침대를 옮기다 허리를 삐끗하는 장면입니다.
황대우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하는 쪽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대우는 성인 여자가 남자 품에 안겨 혀 짧은 소리를 하는 것에 온몸이 오그라듭니다. 별자리와 혈액형으로 한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려는 비이성적 논리를 가진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우 입장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다 혼자 침대를 옮기게 되고 왠지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물리치료만 받으면 곧 나을 것 같던 허리 통증은 황대우의 신경을 계속 건드립니다. 혼자 살아본 사람들은 누구의 간호도 받지 못하고 끙끙 앓아야 하는 통증의 두려움을 느껴보게 됩니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줄 사람, 내가 아플 때 약국에서 약처방이라도 받아다 줄 사람이 필요함을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통해 알게 됩니다. 황대우는 그제야 이성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아닌 감성적 끌림에 목말라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 장면 3
황대우와 이미나가 우여곡절 끝에 첫날밤을 보내려는 침대 장면입니다.
미모에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미나의 본명은 이미자였습니다. 미술전공에 독서가 취미였다는 것도 이미나의 집 벽에 걸린 ‘몬드리안’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금방 탄로가 납니다.
자기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분석하는 예민함을 가진 황대우는 단순한듯하면서 저돌적이고 뻔뻔하면서 치밀한 면이 있는 이미나에게 이미 빠져있었습니다. 그녀의 거짓된 삶의 패턴을 다 받아들일 마음으로 침대에 뛰어듭니다. 이미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려 하고 황대우는 과거 따윈 상관없다고 합니다. 이미나는 안심이 되면서 감동합니다. 그 순간 황대우는 말합니다.
“그럼요, 그럼요... 사람만 안 죽였으면 됩니다.”
이미나는 본능적으로 “네!?” 하면서 놀랍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 대한 감상
이 영화는 한 장면도 한 마디도 제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했습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진부하지 않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황대우는 여자도 사랑도 믿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믿으며 싱글의 삶을 즐겼습니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오면서도 자신은 괜찮다고 위안하려 합니다. 유치한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굳게 다짐할수록 밀려드는 헛헛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지성과 미모와 인성을 모두 갖춘 여자를 만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마음도 보입니다. 이미나는 허술하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본능적인 민첩함과 주도면밀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이 황대우의 이상형과 닮아있어 서로에게 끌린 것 같습니다. 이혼녀에 살인자에 거짓으로 뒤덮인 그녀의 삶을 황대우는 끌어안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 명에서 하나 더한 네 명을 죽였다는 이유로 가슴 아픈 이별을 선택합니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형과 딱 맞진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이상형의 형태도 무뎌집니다. 그리고 비슷해 보이는 누군가가 호의를 보이면 내민 손을 마주 잡게 되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이상형을 차마 버리지 못하지만 자신의 옆에 있어주는 이상형과 비슷해 보이는 상대를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지구별의 지구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