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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의 일(日, 業)- 4 예전에 비하면 하나의 희미한 선에 불과한 상처가 하봉에겐 여전히 깊은 상처로 새겨져 있다. 남자들과 미팅이나 소개팅을 할 때면 혹여라도 화장이 땀에 지워져 있을까 수시로 거울을 훔쳐봐야 했다.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몇 명 있었지만, 하봉은 자신 안에 각인된 깊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뾰족하게 대했다.  연말이나 기념일들이 다가올 때면 가뭄에 콩 나듯이 소개팅이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커플이 부각되는 시기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마음으로 거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혼자인 이유를 친구들은 하봉의 눈이 높고, 까다로워서라고 한다. 하기 좋은 평가다. 키는 자기보다 같거나 조금 작거나 커도 상관없다. 하봉의 키가 170센티에 근접하기 때문에 유전학적으로 그리 큰 사람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외모도 .. 2024. 12. 19.
하봉의 일(日, 業)- 3 “진짜는 아니겠지?”“가서 물어봐!”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는 없다. 그냥 아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자주 만나는 편이고, 시간을 내서 만나는 정도다. 대개의 경우 친구라고 하지만 하봉은 그들에게 속마음을 내놓지 않는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고 하봉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다. 더 바라면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받은 만큼 기대치가 커지니 부담스럽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블로그의 구독자가 늘어나고 수입이 늘자, 친구들은 부러움과 시샘을 같이 보냈다. 거기다 한 친구는 하봉의 블로그를 비난하고 다녔다. 그 친구는 나서서 비난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동조했다. 하봉의 앞에서는 그 친구를 욕했지만, 주고받는 말 사이에 블로그.. 2024. 12. 18.
하봉의 일(日, 業)- 2 “그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생각이 많아질 때 사람들은 일에 몰두하거나, 운동을 격하게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하봉은 우선 냉장고의 문을 연다. 냉장고는 한 대지만 알차게 채워져 있다. 냉동실에 기본적으로 삼겹살과 볶음용 닭과 치즈와 만두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크림 빵류들이 이름과 날짜가 적힌 팩에 정리돼 있다. 냉장실에는 각종 소스와 과일과 채소가 자리 잡고 있고, 먹다 남은 배달 음식들도 락앤락 통에 정리돼 있다. 협찬으로 받은 배즙과 도라지즙 등도 채소 칸에 채워져 있다. 벽면 수납장은 라면과 과자류와 각종 캔과 음료로 진열돼 있다. 집안 어디를 가나 먹을 것들이 구비돼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  며칠 전 먹다 남은 매운 닭발을 치즈를 뿌려 전자레인지.. 2024. 12. 16.
하봉의 일(日, 業) -1 1. “어땠어?”“……” 대체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제일 먼저 갈 것이다. 하봉은 정오가 가까워서야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놓인 어제, 정확히는 오늘 새벽 먹다 남은 것을 먹는다. 대체로 야식으로 배달해 먹었던 치킨이나 닭발, 피자 그리고 떡볶이 등이다. 어제 신제품이라 먹어달라는 요청이 있어 녹화하면서 먹은 유명 브랜드 치킨과 곁들여 시킨 치킨볼과 스파게티를 먹고 나니 속이 부대꼈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돼 버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앞에 놓인 것들을 주섬주섬 집어 먹는다. 먹다 보면 바닥이 드러나고 뭔가 아쉬움을 느낀다.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볼일을 보고 씻고 나오면 얼추 오후 1시. 대충 옷을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다. 누군가 목욕탕에 친하지 않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면 .. 2024.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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